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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손가락으로는 꼽을 수 없을 만큼 꽤 여러 번 제주도를 다녀갔다. 이제는 익숙할 만도 한데 같은 듯, 다른 듯 제주도는 찾을 때마다 묘한 낯섦으로 다가오는 곳이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마주치는 야자수가 그렇고, 가는 곳마다 보이는 주변의 풍광들이 늘 보던 익숙한 모습인 듯하다가도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산(靈山)인 한라산을 중심으로 오목조목 솟은 수많은 오름과 시원스레 펼쳐진 초원, 그리고 곶자왈을 비롯한 원시림은 낯선 제주여행의 백미로 꼽힌다. 그리고 이러한 익숙함과 낯섦의 중심에 제주시가 있다. 제주도 관광과 산업은 물론 역사, 문화의 중심인 제주시는 제주 여행의 관문이자 거점인 곳으로 제주 본래의 모습과 현대화된 도시로서의 제주가 공존하는 곳이다.
산천단 곰솔과 방선문 계곡
제주시 아라동의 산천단은 한라산신제를 올리는 제단이 있는 곳이다. 한라산신제는 원래 탐라국 시대부터 한라산 백록담 북쪽 기슭에서 봉행 되던 것으로 고려 후기인 1253년에 국가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제례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산신제에 참가한 주민들이 얼어 죽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자 조선 시대인 1470년 제주목사 이약동이 현재의 산천단으로 제단을 옮겼으며, 이후 1703년에는 제주목사 이형상의 건의에 따라 공식적인 국가 제례로 채택되었다. 또한, 이곳은 과거 곰솔의 군락지로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곰솔은 수령이 500에서 600년으로 추정되며, 키가 무려 19m에서 23m에 이르는 거대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원래 산신제는 사냥감을 잘 잡을 수 있도록 비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제주도의 한라산신제는 국가의 태평성대와 백성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범국가적 제례로서 일제 강점기에 잠시 중단되었다가 해방 후 주민들에 의해 부활해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산천단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신선이 산다고 전해지는 방선문 계곡이 있다. 방선문 계곡은 예부터 영주10경(靈洲 十景)의 하나인 영구춘화(瀛丘春花)로 잘 알려진 곳이다. 영구(瀛丘)란 ‘신선이 사는 곳’이라는 뜻으로 방선문 계곡의 절경이 마치 신선이 사는 것처럼 아름답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방선문은 한라산 북쪽 기슭의 물이 모두 흘러들어온다는 한천(漢川) 상류에 있는 큰 바위를 가리키는데 영구(瀛丘) 이외에 등영구, 들렁귀, 환선문 등 여러 별칭으로 불려 왔다. 옛날부터 제주 지역에 부임한 지방 관리를 비롯해 많은 선비와 문인들이 이 계곡을 찾아 풍류를 즐기면서 절벽의 바위 곳곳에 글을 남겼으며, 현재 50여 개의 마애명(磨崖銘)이 남아있다. 마애명이란 자연상태의 바위나 벼랑의 편편한 면에 글자를 새기는 것을 말하며 제주에서는 대표적인 마애명을 이곳 방선문과 용연, 산방굴사, 오현단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효자가 약초를 찾아 헤매다가 이곳에서 신선을 만나 도움을 받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크고 작은 바위들이 주변 녹음 속에 널린 모습이 정말 신선을 만날 것 같은 신비함으로 다가오는 곳이다.
두멩이골목과 곤을동
제주시 일도2동에는 좁은 골목 사이로 이어지는 담벼락마다 아련한 추억의 조각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기억의 정원 두맹이골목’이라 불리는 이곳의 담벼락에는 7080세대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는데, 골목에서 말뚝박기를 하며 신나게 뛰어놀던 유년 시절 나의 모습과 까치와 엄지 그리고 마동탁이 나오는 만화책을 보느라 정신이 팔린 친구들의 모습, 까까머리에 콧물 흘리며 공을 차던 가난한 시절의 대한민국이 빛바랜 앨범 속 사진처럼 붙어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로보트 태권브이와 아톰이 지구를 지키고, 여전히 순수하고 아름다운 캔디와 테리우스를 만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미래소년 코난과 포비가 반갑게 뛰어오고, 둘리는 오늘도 어디론가 말썽을 피우러 가는 듯 희동이와 도우너 그리고 또치와 함께 신이 나 있다.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시간과 추억이 짠하게 가슴을 아리는 곳, 기억의 정원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이곳은 짧은 시간이지만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추억의 공간이 되어준다. 옛날 황폐한 불모지였던 이곳을 사람들은 돌이 많은 곳이라 해서 ‘두무니머들’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두맹이골목이라는 명칭은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두멩이골목을 나와 차로 10분만 가면 '곤을동 4.3 유적지'가 나온다. 대한민국의 근대사가 그렇듯 일제 강점기와 이데올로기의 대립기에 억울한 희생양이 되어야 했던 제주도의 근대사는 눈물과 아픔으로 점철된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중 4∙3 사건은 아직도 제주도민의 가슴에 피멍을 들인 채 그대로 남아있는 처절한 기억으로, 제주시 화북동 4440번지 일대에 소재한 곤을동에 대한 기록 역시, 지울 수 없고 지워지지도 않는 4∙3에 대한 아픔을 간직한 대표적인 기록 중 하나이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에 의한 미군과 이승만 정권의 정책 노선에 따라 무자비한 학살이 자행되던 당시 별도봉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안곤을’의 22가구와 화북천 두 지류의 가운데 있던 ‘가운뎃곤을’ 17가구 그리고 ‘밧곤을’에 있던 28가구는 1949년 1월 5일 국방경비대에 의해 주민 학살과 함께 모든 가구가 불태워지는 참혹한 변을 당했다. 이후 인적이 끊긴 곤을동은 제주시 인근 해안마을이면서도 폐쇄되어, 잃어버린 마을의 상징이 되었고, 지금은 집터와 올레의 흔적만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서 4∙3 사건 당시의 아픔을 증거하고 있다.
제주의 하루를 편히 즐기는 언덕, 도두봉
도두봉은 제주시 도두동에 있는 오름으로 정상부에 화구가 없는 원추형 화산체다. 예부터 도도리산, 도도리악 등으로 불렸고, 마을이 도두리로 정착되면서 지금의 도두봉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2009년 제주시가 선정한 ‘제주시 숨은 비경 31’ 중 하나로 선정되었을 만큼 주변의 경관이 아름다우며, 특히 일출을 볼 수 있는 명소 중 하나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올레 17코스에 속해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높이가 고작 67m밖에 되지 않아 평소에도 아름다운 바다와 한라산을 바라보며 편하게 쉴 수 있는 사색의 공간으로 인기가 높다. 남사면은 풀밭을 이루면서 듬성듬성 해송이 있고, 북사면은 삼나무와 낙엽수 등이 어우러져 숲을 이루고 있다. 봉우리는 2개이며, 동쪽 봉우리가 높고 주변에는 국수나무, 팥배나무, 덜꿩나무, 예덕나무 외에 여러 종류의 새우란, 바람꽃 등의 야생식물이 자라고 있다. 특히 한라산과 제주시 쪽을 바라보면 도두봉 바로 앞에 있는 제주 공항으로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눈앞에서 커다란 비행기가 활주로에 뜨고 내리는 것을 직접 바라보는 재미 또한 색다르다. 그리고 하루 중 해가 저물녘에는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새벽 일출부터 낙조까지 제주의 아름다운 하루를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