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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여행의 절반은 먹방이 차지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먹거리는 보고 즐기는 것만큼 중요하다. 그렇다보니 여행을 계획할 때 일정과 숙소를 정한 후 빼놓지 않고 정리하는 것이 먹거리와 식당이다. 제주도 여행에는 잘알려진 음식이 몇 가지 정해져 있다. 하지만 제주도 만큼 먹거리가 풍부한 곳도 드물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먹거리 외에 맛있는 음식이 차고 넘친다. 그 중에도 제주도 현지인이 추천하는 식당들은 육지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진짜 제주도 맛을 느낄 수 있는 곳들이다.
고르멍드르멍에서 즐기는 제주 향토음식
‘고르멍드르멍’은 조금 허름해 보이는 실비 집 외관의 제주 향토음식점으로 제주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맛집이다. 하지만 제주국제공항에서 5분 거리에 있기 때문에 식사 때를 맞춰 도착한 여행객이라면 이곳에서 진짜 제주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저렴한 가격에 편하게 식사를 하기에는 몸국이나 보말국을 권하지만 일이천 원만 더 주면 훨씬 고급진 보말성게미역국을 먹을 수 있으니 개인적으로는 보말성게미역국을 적극 추천한다. 가볍게 식사를 하고 싶다면 이곳의 고기국수도 제주도 현지 음식을 경험하기에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제주도의 보말성게미역국은 일반적인 미역국과 달리 손이 많이 가는 음식으로 알려졌다. 고르멍드르멍에서 보말성게미역국을 만드는 과정을 보더라도 이정도 가격에 먹기 미안할 만큼 수고가 많이 필요하다. 먼저 보말을 깨끗이 손질한 후 삶아 낸다. 그리고 이를 으깨어 내장과 몸통을 분리하고 돌가루를 걸러내는데, 이는 보말이 바위에 붙어있는 해초류를 먹을 때 돌가루를 같이 먹기 때문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보말을 손질하는 것과 별도로 미역국을 따로 만드는데, 우선 생미역에 두부와 다진 마늘을 넣고 끓인 다음 여기에 보말을 삶았던 물을 섞어 다시 끓인다. 보통은 소고기로 육수를 내지만, 제주도에서는 보말 육수를 사용하는 것이다. 미역국이 어느 정도 끓어가면 볶은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그리고 미역국이 충분히 끓어오르면 마지막으로 성게 알과 메밀가루를 넣고 1~2분 정도 끓여서 완성한다. 보통은 미역국을 끓이기 전에 미역과 보말을 참기름에 볶아서 재료를 준비하는데, 고르멍드르멍에서는 기름에 볶는 과정이 없다. 보말을 끓인 물에 볶은 소금으로 간을 하는 것이 더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기름에 볶지 않아서인지 고르멍드르멍의 보말성게미역국은 바다 향이 훨씬 강하고 보말의 식감도 더 쫄깃하다. 개인적으로 권하고 싶은 고르멍드르멍의 또다른 별미는 고기 국수다. 현지인의 말을 빌리면 고르멍드르멍의 고기국수야 말로 가장 제주도다운 맛을 가진 음식이라고 한다. 알려진대로 제주도의 고기국수는 일본의 라멘처럼 돼지사골 육수를 사용한다. 그래서 돼지사골 육수에 익숙하지 않은 타지역 사람들 중에는 고기국수를 거북해 하기도 한다. 그래서 고르멍드르멍의 고기국수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다양한 재료와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돼지의 잡내를 없앴다고는 하지만 특유한 맛이 있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힘들 수 있다. 제주도 향토음식인 몸국 역시 돼지 육수를 사용하므로 돼지사골 육수가 자신 없는 사람들은 아예 보말국이나 보말성게미역국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제주도 해물탕 일번지, 대원가
제주도에서 해물탕을 먹는 사람은 드물 것 같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제주도를 찾았다면 일행 중에 분명히 해물탕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제주도에 먹을 것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 해물탕을 먹느냐고 면박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대원가의 해물탕은 섬 밖에서 먹어본 해물탕과 수준이 다르다. 그래서 면박을 주던 사람도 이곳의 해물탕을 먹고 나면 대부분 만족스러워 한다. 해녀출신인 이곳의 주인장이 처음 식당을 개업하면서 내세운 음식은 '전복뚝배기'였다고 한다. 제주산 성게로 밑간을 해 해산물의 비린내를 없애고, 전복 고유의 맛과 향을 살린 전복뚝배기는 당시 제주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아 입소문을 타고 금방 유명해졌다. 이후 전복뚝배기의 비법을 그대로 살려 만든 것이 활전복해물탕인데 지금은 해물탕이 대원가의 대표 메뉴로 자리를 잡았다. 이곳 해물탕의 특징은 커다란 키조개와 함께 냄비 전체를 뒤덮은 활전복이다. 이렇게 많은 활전복이 담겨 나온 해물탕은 어디서도 먹기 힘들다. 거기에 딱새우와 꽃게 그리고 다양한 조개들과 홍합이 싱싱한 버섯과 콩나물에 뒤덮여 나온다. 특히 육수가 끓어 오르면 살아 있는 문어를 넣어 주는데, 먹기 전에 보는 것만으로 이미 만족스럽다. 20마리가 넘는 전복을 비롯해 해물탕에 있는 수많은 해산물을 어느 정도 먹고 나면 해물탕에 빠질 수 없는 라면 사리를 넣어준다. 해산물로 이미 배가 부르다 싶더라도 라면 사리는 몇 개를 넣어도 부족할 만큼 일행들이 서로 먹겠다고 젓가락이 바쁘다. 라면사리까지 먹고 나면 이젠 배가 불러 더 이상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을 것 같지만 아직 잡곡밥이 남아 있다. 한국 사람은 뭘 먹어도 마지막에는 밥을 먹어야 식사가 끝나는 것이니 만큼 해물탕에 밥을 말아 먹는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배가 불러도 밥이 들어갈 자리는 남아 있는지 먹다보면 밥도 한 공기를 다 비운다. 제주도 여행 중에 아침이나 저녁 식사를 해물탕으로 하기보다는 점심 식사 한 번 정도는 대원가를 찾기를 추천한다.
봉덕뜨락의 보말 굴 짬뽕과 백년초 탕수육
다양한 요리와 수많은 맛집이 즐비한 제주도에서 중식당은 어쩌면 너무 흔해서 오히려 눈에 띄지 않는 아이템인 듯 보인다. 그나마 제주에서 인기 있는 중식 아이템을 꼽으라면 마라도까지 가서야 먹을 수 있는 마라도 톳 짜장면과 톳 짬뽕 정도다. 하지만 라면에도 문어를 넣어 먹는 곳이 제주도인데, 제주다운 중식 아이템이 고작 톳 짜장면과 톳 짬뽕밖에 없을까? 한림읍 귀덕리의 한적한 길가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이 층 양옥집, 거기 한가운데 커다랗게 붙은 간판에는 ‘봉덕뜨락’이라는 이름이 도드라지게 한눈에 들어온다. 식당의 모습도 간판에 적힌 이름도 전혀 중식당처럼 보이지 않지만, 이곳은 제주도에서 가장 맛있는 짬뽕과 탕수육을 맛볼 수 있는 맛집 중의 맛집이다. ‘봉덕’은 제주 말로 화로를 뜻하는데, ‘봉덕뜨락’은 이런 의미를 알고 들으면 따듯하고 정이 느껴지는 이름이 된다. 동네 주민 중에는 주변의 봉성과 귀덕의 마을 이름을 더해 만든 합성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이곳의 주인장 입장에서는 그런 오해도 오히려 고맙기만 하다. 이곳을 운영하는 조한진 대표와 조광석 대표는 이름만 들으면 형제인 줄 알지만, 사실은 우정이 돈독한 친구 사이다. 서울 힐튼호텔과 메리어트호텔 중식 부에서 경력을 쌓은 이 두 사람은 중식 업 경력 20년의 베테랑 셰프로서 제주에 내려와 이젠 제주 사람이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개발한 레시피가 바로 ‘보말 굴 짬뽕’과 ‘백년초 탕수육’이다. 바다 고둥의 제주 방언인 보말은 흔하지만, 채취와 해감 그리고 알맹이를 빼는 작업이 보통이 아니므로 손이 많이 가는 재료다. 그리고 백년초는 제주도 지방기념물 제35호로서 한림읍 월령리 해안가를 중심으로 자생하는 식물인데, 백 가지 병을 고치고 백 년을 산다 해서 이름이 백년초가 되었다. 그리고 이 두 재료는 모두 제주도를 대표하는 신토불이 재료로서 특히, 한림읍에서 얻을 수 있는 식재료들이다. 보말이 한가득 담긴 ‘보말 굴 짬뽕’은 다른 짬뽕과는 차원이 다른 전혀 새로운 맛을 경험하게 해준다. 특별한 방법으로 만든다는 면발은 기계로 뽑지만 마치 수타로 만든 면발처럼 쫀득한 식감을 느끼게 해주며, 국물은 얼마나 시원한지 우동수저로 감칠맛 나게 떠먹기보다 그릇째 들고 냉수 마시듯 들이키게 된다. 백년초 탕수육은 소스는 물론 고기 튀김에도 백년초 가루가 뿌려져 있어 마치 고운 꽃가루를 뿌린 듯한데, 튀김 옷이 얇고, 고기가 두툼해 식감이 좋고 돼지 냄새를 전혀 느낄 수 없다. 제주도 음식이 좀처럼 입에 맞지 않는 사람이거나 중식을 즐기는 마니아라면 익숙한 음식에 제주도 다운 맛이 듬뿍 배 있는 ‘봉성뜨락’의 메뉴들을 놓치지 말자.